이창동 감독 '시' - 스크린에 시를 쓰는 경지



<아네스의 노래>

그곳은 어떤가요 얼마나 적막하나요.
저녁이면 여전히 노을이 지고
숲으로 가는 새들의 노래소리 들리나요.
차마 부치지 못한 편지 당신이 받아볼 수 있나요.
하지 못한 고백 전할 수 있나요.
시간은 흐르고 장미는 시들까요.

이제 작별을 할 시간
머물고 가는 바람처럼 그림자처럼
오지 않던 약속도 끝내 비밀이었던 사랑도
서러운 내 발목에 입 맞추는 풀 잎 하나
나를 따라온 작은 발자국에게도
작별을 할 시간

이제 어둠이 오면 다시 촛불이 켜질까요.
나는 기도합니다.
아무도 눈물은 흘리지 않기를
내가 얼마나 간절히 사랑했는지 당신이 알아주기를
여름 한낮의 그 오랜 기다림
아버지의 얼굴같은 오래된 골목
수줍어 돌아 앉은 외로운 들국화까지도 내가 얼마나 사랑했는지
당신의 작은 노래소리에 얼마나 가슴 뛰었는지

나는 당신을 축복합니다.
검은 강물을 건너기 전에 내 영혼의 마지막 숨을 다해
나는 꿈꾸기 시작합니다.
어느 햇빛 맑은 아침 깨어나 부신 눈으로
머리 맡에 선 당신을 만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