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위한 SHMILY
당신을 위한 SHMILY
내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결혼한 지 50년이 넘었는데,
처음 만났을때부터 두 분만의 특별한 놀이를 즐기셨다.
그 놀이는 두 분 가운데 한 분이 쪽지에 SHMILY라는 단어를 적어
어디엔가 숨겨두면 다른 한 분이 그 쪽지를 찾는 것이었다.
두분 가운데 한분이 그걸 찾으면,
이번에는 찾은 분이 다시 쪽지를 숨기는 식으로 놀이는 계속되었다.
두 분은 다음 식사 준비를 하는 사람을 위해 설탕통과 밀가루통 속에 SHMILY쪽지를 밀어넣기도 하고,
할머니가 늘 우리에게 손수 만든 푸딩을 먹여주시던 테라스가 내다보이는 창문에 뿌옇게 이슬이 맺히면 거기에 손가락으로 SHMILY를 써놓기도 했다.
두 분은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고 난 뒤 김 서린 거울에 SHMILY를 남기기도 했다.
언젠가 할머니는 두루마리 휴지 마지막 장에 SHMILY를 남기기 위해 휴지 하나를 완전히 풀어버린 적도 있다.
SHMILY는 끝없이 어디에선가 튀어나왔다.
작은 쪽지에 급하게 휘갈겨 쓴 SHMILY는 자동차 계기판과 좌석에서 발견되기도 하고, 운전대에 테이프로 붙여지기도 하고, 신발 안에 혹은 배게 밑에 남겨지기도 했다.
SHMILY는 벽난로의 장식 선반에 쌓인 먼지 위에 씌여질때도 있고, 벽난로안의 재 속에 그려질때도 있었다.
SHMILY라는 알 수 없는 단어는 가구와 다를 바 없는 할아버지 할머니 집의 일부였다.
내가 이 놀이의 진가를 완전히 인정하게 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나는 진정한 사랑- 순수하고 영원한 사랑- 이라는 것에 회의를 품고 있었다.
그렇지만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관계에 대해서만은 의심을 품은 적이 없다.
두 분은 사랑을 완전히 이해하고 있었다.
두 분의 놀이는 단순한 심심풀이용 장난이 아니었다.
그것은 삶의 한 방식이었다.
두 분의 관계는 헌신과 열렬한 애정- 모든 사람이 이것을 경험할 수 있을만큼 운이 좋은 건 아니다-에 바탕을 두고 있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기회가 있을때마다 손을 잡았다.
두 분은 좁은 부엌에서 마주치면 재빨리 도둑키스를 했다.
두 분은 서로 첫 마디만 들어도 뒤에 무슨말이 나올지 훤히 알았다.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젊을때도 멋있었지만 나이가 들수록 점점 더 멋있어진다고 내게 소곤거리곤 했다.
할머니는 당신이정말로 사람 하나는 잘 골랐다고 주장하셨다.
식사를 하기 전에 두분은 늘 고개를 숙이고 감사 기도를 올렸다.
서로를 만나 좋은 가정을 이루고 행복하게 살게 해주신 신의은총이 그저 놀랍기만 한 모양이었다.
그러나 할아버지 할머니의 삶에도 먹구름이 드리웠다.
할머니가 유방암에 걸린 것이다.
암이 처음 나타난 것은 그보다 10년 앞서였다.
그때도 할아버지는 그림자처럼 할머니 곁을 떠나지 않으셨다.
할아버지는 할머니가 너무 아파 밖에 나갈 수 없을때면 햇빛에 둘러싸인 것처럼 느낄 수 있게 방을 노란색으로 칠하고,
그 방에서 할머니를 편히 쉬게 해주셨다.
이제 암이 다시 할머니의 몸을 공격하고 있었다.
할머니는 지팡이와 할아버지의 든든한 팔에 의지해 매일 아침 교회에 가셨다.
그러나 할머니는 점점 쇠약해져 결국은 집밖으로 걸음을 할 수 없는 지경이 되셨다.
한동안 할아버지는 혼자 교회에 가서 하느님께 아내를 지켜달라고 기도하시곤 했다.
그러던 어느날 급기야 우리 모두가 우려하던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것이다.
이제 SHMILY는 할머니의 장례식 꽃다발을 묶은 핑크빛 리본에 노란 글씨로 씌여 있다.
조문객들이 모두 돌아가고 가까운 일가 친척들만 마지막으로 할머니 곁에 모였을때,
할아버지는 할머니의 관 앞으로 다가서더니 불안하게 숨을 몰아쉬고 나서 할머니에게 노래를 불러주기 시작했다.
할아버지의 눈물과비탄사이로 노래가 흘러나왔다.
할아버지가 목멘 소리로 나지막이 부르는 노래는 자장가였다.
나는 그 순간을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두 분의 사랑이 얼마나 깊었는지 그 사랑의 깊이를 잴 수는 없었지만,
비할 데 없는 사랑의 아름다움을 내 눈으로 직접 보았기 때문이다.
♥S-H-M-I-L-Y: See How Much I love you. (내가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보세요)
<바보들은 왜 사랑에 빠질까(why do fools fall in love?)> by 재니스R.리바인 & 하워드J.마크먼>
(그런데 소설같은 얘기 아니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