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한이라는 것은
한 평생 살아가면서
이 가슴속에 첩첩이 쌓여서
응어리 지는 것이다
살아가는 일이 한을 쌓는 일이고
한을 쌓는 일이 살아가는 일이 된단 말이야
…….
니 속에
응어리진 한에 파묻히지 말고
그 한을 넘어서는 소리를 혀라
<서편제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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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일리겐슈타트의 유서>
내 동생 카를과 요한에게.
- 내가 죽은 뒤에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오! 너희들, 나를 지독한 고집불통으로 여기면서 염세적인 인간으로 치부하고 남들에게도
그렇게 떠벌이고 다니는 사람들아! 나에 대한 너희의 그런 잘못된 생각의 숨겨진 진짜
원인을 너희는 모르고 있다. 오늘날까지 나는 마음과 정신에서 우러나는 선행을 매우
좋아했다. 심지어 선행을 성취하는 것을 내 의무로까지 여겨왔다. 그러나 한 번 생각해
보아라. 6년 동안 비참했던 내 상황에 대하여! 무능한 의사들 때문에 증상이 자꾸만 나빠져
가는 것도 모른 채 머지않아 회복되리라는 헛된 희망에 2년을 속았다. 그러다가 마침내는
병이 ‘만성’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설령 어느 정도의 회복은
가능했을지라도 완쾌하기까지의 시간은 장담할 수 없었다.
사교의 즐거움에도 쉽게 끌릴 만큼 열정적이고 활발한 성질을 타고난 내가 아니었더냐!
그런데 이토록 이른 나이에 사람들로부터 멀어져 혼자 외롭게 살아야만 할 형편이다.
이 모든 장애를 마음에서 밀쳐내려는 행동도 해보았지만 곧 내 귀가 들리지 않는다는 슬픈
사실만 몇 배나 더 뼈저리게 느껴야 했다. 얼마나 가혹한 삶이냐! 사람들에게 “더 큰소리로
말해 주시오, 소리쳐 달라구요. 나는 귀가 안 들린단 말이오!” 라고 말할 수가 없었다.
아! 다른 누구보다도 온전해야할 청각이, 지난날에는 정상적으로 마음대로 누리던, 아니
전에는 누구보다도 완벽하게 기능했던 그 감각을 잃어가고 있다. 이러한 사실을 누군가
눈치챌까봐 이제는 다닐 수가 없었다. 도저히 못할 노릇이었지. 너희와 함께 있고 싶은 마음
간절한데, 그렇지 못한 나의 고독을 이해해다오, 이 불행을 사람들이 멋대로 오해하도록
내버려 두는 수밖에 없으니 나로서는 이중으로 고달프구나,
모임에서 사람들과 어울려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 감정을 토론하는 것이 나에게는 허락되지
않는단 말이다. 다만 어쩔 수 없을 때에만 사람들 속으로 들어갈 뿐이고 마치 추방된 인간
처럼 살아야 한다. 사람들에게 다가서면 곧 내 귓병이 들통 나지 않을까 하는 무서운 불안이
덮친다. 지난 반년동안 시골구석에 처박혀 지낸 것도 그 때문이었다. 되도록 청각을 쉬게
하라는 의사의 현명한 권고가 지금의 내 자발적인 의도와 맞아 떨어진 셈이다. 하지만
이따금 사람들의 모임에 끼고 싶은 견딜 수 없는 유혹에 빠지곤 한다. 내 옆의 모든 사람은
플룻 소리를 듣는데 나에게는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고, 누군가는 양치기의 노래 소리를
듣는데 나는 전혀 듣지 못할 때 느끼는 그 큰 굴욕감이란…. 이런 꼴을 자주 당하다 보니
나는 거의 희망을 잃었다. 스스로 목숨을 끊고 싶은 충동까지 일었다.
나를 붙잡은 건 오직 ‘예술’이었다.
내가 사명을 다하지 못한 채 이 세상을 저버려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이 비참하고 안타까운 삶을 지탱하고 있는 불안정한 육체는, 아주 조그만 변화에도 나를
최선의 상태에서 최악의 상태로 몰아붙이고 있다.‘인종(忍從)’. 내가 인생의 안내자로
삼아야 할 것은 인종이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그리고 나는 그렇게 했다. 참으려는 나의
결심이 오래 지속되기를 바랄뿐이다. 운명의 모진 여신이 마침내 심장의 박동을 멈추게 해
기뻐하는 그 순간까지, 내 상태가 호전되든지 악화되든지 간에 나는 삶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 있다. 28세의 나이에 어쩔 수 없는 사람(필로도프)이 된다는 것을 깨닫는 것은
힘든 일이다. 이는 다른 사람의 경우보다 예술가에 있어서는 더하다.
신(Gottheit)이시여! 당신께서는 나의 마음속을 들여다보고 계시니 이 모든 것을 아실테지요.
마음속에 사람들에 대한 사랑과 선행에 대한 바람으로 가득 차 있음을 말입니다.
아아, 나에 대한 사람들의 행동이 얼마나 옳지 못했는지를 나의 이러한 상황들을 이해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불행한 사람들은 자기와 똑같이 불행했던 한 인간이
온갖 장애에도 불구하고 가치 있는 예술가와 인간의 대열에 끼기 위하여 전력을 다한 것을
보고, 거기에서 새로운 희망을 찾게 될 것이다.
너희들, 내 동생 카를과 요한아, 내가 죽었을 때 슈미트 교수가 아직 살아있다면 즉시
교수에게 내 병상기록을 내 이름으로 의뢰해다오, 그 병상 기록에 이 편지를 함께 놓아라.
그러면 내가 죽은 후 세상 사람들과 나 사이에 얼마쯤의 화해가 이루어지겠지. 또 지금 나는
너희들을 나에 재산-그것을 재산이라고 말할 수 있다면- 상속인으로 정한다. 그것을 둘이서
똑같이 나누어 가져라. 사이좋게 지내고 서로 잘 도와라. 너희들의 거슬렸던 행동은 벌써
오래전에 용서했다. 동생 카를아, 네가 요즘 나에게 보여준 호의에 대해서는 특히 감사를
표한다. 앞으로 너희들이 나보다는 행복하고 마음고생 없이 살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너희들의 아이들에게는 덕성을 가르쳐라. 덕성만이 인간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다. 결코
돈은 그렇게 할 수 없다. 내 경험으로 말하는 것이다. 비참함 속에서도 나를 지켜주는 것은
내 덕성뿐이었다.
내 목숨을 스스로 끊지 않을 수 있었던 용기는 예술과 덕성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잘있어라. 서로 사랑해라. 모든 친구, 특히 리히노프스키 공작과 슈미트 교수에게 감사한다.
리히노프스키 공이 너희에게 주신 악기는 너희중 하나가 간직해 주면 기쁘겠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둘 사이에 말다툼이 나서는 안 된다. 돈으로 바꾸는 것이 도움이 된다면 팔아도 좋다.
내가 무덤 속에 있으면서도 너희들에게 도움이 된다면 얼마나 행복하겠느냐.그렇게 될 수
있다면 나는 기꺼운 마음으로 죽음으로 향하겠다. 내 운명이 가혹해서라고 할지라도 예술의
나래를 마음껏 펼쳐 보이기도 전에 죽음이 내게 너무 빨리 왔다고 생각한다. 좀 더 뒤늦게
내게 왔더라면…. 그러나 일찍 내게 덮쳐도 나는 만족한다. 죽음은 나를 끝없는 고뇌로부터
벗어나게 하리라. 오고 싶으면 언제든지 와라. 나는 태연하게 너를 맞이하리라.
그럼 잘있거라. 내가 죽어도 나를 아주 잊어버리지는 말아라. 살아있는 동안 너희를 많이
생각했고 너희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다. 그런 내가 죽더라고 결코 잊지는 말아라.
너희에게 부탁할 자격이 내게는 분명히 있다고 본다. 이 소원을 이루어다오.
루드비히 반 베토벤.
하일리겐슈타트에서, 1802년 10월 6일
-내용출처: 로망 롤랑의 ‘베토벤의 생애와 사랑’, 음악춘추.
The Heiligenstadt Testament
For my brothers Carl and [Johann] Beethoven
Oh you men who think or say that I am malevolent, stubborn, or misanthropic, how greatly do you wrong me. You do not know the secret cause which makes me seem that way to you. From childhood on, me heart and soul have been full of the tender feeling of goodwill, and I was ever inclined to accomplish great things. But, think that for six years now I have been hopelessly afflicted, made worse by senseless physicians, from year to year deceived with hopes of improvement, finally compelled to face the prospect of a lasting malady (whose cure will take years or, perhaps, be impossible). Though born with a fiery, active temperament, even susceptible to the diversions of society, I was soon compelled to withdraw myself, to live life alone. If at times I tried to forget all this, oh how harshly I was I flung back by the doubly sad experience of my bad hearing. Yet it was impossible for me to say to people, “Speak louder, shout, for I am deaf.” Ah, how could I possibly admit an infirmity in the one sense which ought to be more perfect in me than others, a sense which I once possessed in the highest perfection, a perfection such as few in my profession enjoy or ever have enjoyed.–Oh I cannot do it; therefore forgive me when you see me draw back when I would have gladly mingled with you. My misfortune is doubly painful to me because I am bound to be misunderstood; for me there can be no relaxation with my fellow men, no refined conversations, no mutual exchange of ideas. I must live almost alone, like one who has been banished; I can mix with society only as much as true necessity demands. If I approach near to people a hot terror seizes upon me, and I fear being exposed to the danger that my condition might be noticed. Thus it has been during the last six months which I have spent in the country. By ordering me to spare my hearing as much as possible, my intelligent doctor almost fell in with my own present frame of mind, though sometimes I ran counter to it by yielding to my desire for companionship. But what a humiliation for me when someone standing next to me heard a flute in the distance and I heard nothing, or someone heard a shepherd singing and again I heard nothing. Such incidents drove me almost to despair; a little more of that and I would have ended me life – it was only my art that held me back. Ah, it seemed to me impossible to leave the world until I had brought forth all that I felt was within me. So I endured this wretched existence – truly wretched for so susceptible a body, which can be thrown by a sudden change from the best condition to the very worst. – Patience, they say, is what I must now choose for my guide, and I have done so – I hope my determination will remain firm to endure until it pleases the inexorable Parcae to break the thread. Perhaps I shall get better, perhaps not; I am ready. – Forced to become a philosopher already in my twenty-eighth year, – oh it is not easy, and for the artist much more difficult than for anyone else. – Divine One, thou seest me inmost soul thou knowest that therein dwells the love of mankind and the desire to do good. – Oh fellow men, when at some point you read this, consider then that you have done me an injustice; let someone who has had misfortune console himself to find a similar case to his, who despite all the limitations of Nature nevertheless did everything within his powers to become accepted among worthy artists and men. – You, my brothers Carl and [Johann], as soon as I am dead, if Dr. Schmidt is still alive, ask him in my name to describe my malady, and attach this written documentation to his account of my illness so that so far as it possible at least the world may become reconciled to me after my death. – At the same time, I declare you two to be the heirs to my small fortune (if so it can be called); divide it fairly; bear with and help each other. What injury you have done me you know was long ago forgiven. To you, brother Carl, I give special thanks for the attachment you have shown me of late. It is my wish that you may have a better and freer life than I have had. Recommend virtue to your children; it alone, not money, can make them happy. I speak from experience; this was what upheld me in time of misery. Thanks to it and to my art, I did not end my life by suicide – Farewell and love each other – I thank all my friends, particularly Prince Lichnowsky and Professor Schmidt – I would like the instruments from Prince L. to be preserved by one of you, but not to be the cause of strife between you, and as soon as they can serve you a better purpose, then sell them. How happy I shall be if can still be helpful to you in my grave – so be it. – With joy I hasten to meet death. – If it comes before I have had the chance to develop all my artistic capacities, it will still be coming too soon despite my harsh fate, and I should probably wish it later – yet even so I should be happy, for would it not free me from a state of endless suffering? – Come when thou wilt, I shall meet thee bravely. – Farewell and do not wholly forget me when I am dead; I deserve this from you, for during my lifetime I was thinking of you often and of ways to make you happy – please be so –
Ludwig van Beethoven
Heiglnstadt, [Heiligenstadt]
October 6th, 1802